내가 보기에는 세상 전체가 미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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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作 장외인간 中 '내가 보기에는 세상 전체가 미쳐가고 있다' 중에서...


사흘째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인터넷을 열고 리니지에 접속한다. 인터넷에서 내가 상용하는 닉네임은 모검수졸이다. 터럭으로 만든 칼을 차고 변방을 지키는 졸개라는 뜻이다.

내가 리니지를 알게 된 것은 프랙탈 예술을 표방하면서 인터넷 폐인으로 살아가던 필도 녀석의 선동 때문이었다.

"진정한 친구라면 사이버 공간에서도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녀석은 끈질긴 설득을 거듭한 끝에 나를 리니지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리니지 속에는 다양한 종족과 다양한 계층의 캐릭터들이 전투적이면서도 공격적인 행태들을 구사하면서 살고 있었다. 필도 녀석은 날마다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아이템을 챙겨 주기도 하고 피를 보충시켜 주기도 하면서 캐릭터에 집착하도록 유도했다. 현실적으로 나는 폭력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에 접속만 하면 호전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성격으로 돌변해 버리는 특질을 나타내 보였다. 내 의식 어디에 그런 근성이 숨어 있었는지 나로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노릇이었다.

"타고났네 타고났어."

입문한 지 일년을 넘기면서 나는 레벨 53인 필도 녀석과 거의 동급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패배를 통한 치욕을 수없이 거치고 승리를 통한 희열을 수없이 거치면서 초기의 허접하던 캐릭터를 마침내 기사의 반열에까지 올려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나는 리니지를 잊고 살았다. 소요가 나타나면서 리니지에 대한 열정이 식어들었고 그 대신 시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나는 틈만 있으면 리니지에 접속해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무기를 구입하고 전리품을 수집하는 일에 골몰하던 일상들을 접어 버리고 틈만 있으면 교외로 나가 자연을 음미하고 시어들을 채집하고 영혼을 세척하는 일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소요에 의해 죽었던 낭만이 부활하고 소요에 의해 죽었던 문학이 부활했다. 나는 날마다 내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었다. 적어도 소요가 내 곁에 있는 동안만은 그랬다. 그러나 어느날 소요는 미스터리 속으로 잠적해 버렸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 보아도 종적이 묘연했다.

나는 신앙생활을 중단하고 다시 우범지대로 돌아가는 탕자의 기분으로 리니지라는 사이버 전장으로 들어섰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지형지물과 효과음들이 잠들어 있던 내 호전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마을로 가서 불필요한 매물들을 처분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구입한 다음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필드로 진출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몬스터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얼쑤야! 게임발이 잘 받는 날인지 몬스터를 몇 마리 때려잡지도 않았는데 값비싼 고급 아이템 하나가 툭하고 떨어져 내렸다. 횡재였다. 그런데 갑자기 을지문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훼방꾼 하나가 나타났다. 훼방꾼은 말 한 마디 없이 내 뒤를 쫓아다니면서 내가 공격하던 몬스터들을 자기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잡한 방법으로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을지문덕님. 매너를 쓰레기 소각로에다 처박아 두고 오셨습니까?"
나는 다소 거친 어투로 훼방꾼을 질타했다. 그러나 훼방꾼은 아무 대꾸도 없이 서 있었다. 아무 대꾸도 없이 서 있다가 내가 몬스터를 공격하면 다시 자기도 공격하는 추태를 반복했다. 나는 조금씩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을지문턱은 을지문덕을 패러디한 닉네임이 분명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유명인의 이름을 패러디한 닉네임이 유행하고 있었다. 생떽쥐베리를 패러디한 생떼쥐벼룩. 안델센을 패러디한 안될 손. 마이클잭슨을 패러디한 많이클잭슨. 차이코프스키를 패러디한 차에코푼새,끼. 강감찬장군을 패러디한 강간찬장군. 허난설헌을 패러디한 허한설흔. 세종대왕을 패러디한 새총대왕. 특히 초등들이 유명인의 이름을 패러디한 닉네임을 즐겨 사용하는 성향이 짙었다. 나는 훼방꾼 녀석도 초딩일 거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초딩은 초등학생을 지칭하는 인터넷 용어였다.

"을지문턱님.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나는 다소 정중한 어투로 녀석의 나이를 물었다.

"겜에나 신경쓰셈."
드디어 녀석이 말문을 열었다. 초딩들이 즐겨 쓰는 셈투문체를 쓰고 있었다. 예상대로 초딩이 분명해 보였다. 초딩은 나이를 물어 보면 십중팔구는 필요 이상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 보인다. 겜에나 신경쓰셈, 이라는 대답은 일견 아리송한 느낌을 주지만, 저는 초딩이셈, 이라는 멘트나 다름이 없다. 아직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리니지는 18금 게임이었다. 말하자면 18세 이하는 입장불가였다. 하지만 초딩들은 부모들이나 삼촌들의 신상정보를 도용해서 접속한다. 어차피 잠이 오지 않아서 시간을 죽이러 들어온 판국에 초딩이면 어떠랴.

"너 초딩이지."
"븅딱."

역시 초딩들이 즐겨 사용하는 은어였다. 병,신 코딱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초딩이니까 반말하겠다."

"깝치지 마셈."
녀석은 반말을 수락한다는 의사를 회피하고 있었다. 요즘 초딩들은 병적으로 자존심을 고수하려는 특질을 나타내 보인다. 적어도 사이버 공간에서는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절대로 겸손을 드러내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철두철미하게 이기는 법만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배타적이고 전투적인 성향으로 변모된다. 초딩들에게는 모든 타인이 적이다. 자존심이 꺾였다는 사실은 곧 패배자로 전락했다는 사실과 동일하다.

"모검수졸이 무슨 뜻이셈?"
"간단하게 말하면 졸병이라는 뜻이지."

"으하하하."
"왜 웃냐."

"을지문덕이 누군지도 모르셈?"
"하지만 너는 을지문덕이 아니라 을지문턱 아니냐."

"패러디도 모르는 븅딱이셈?"
"어른을 보고 븅딱이라니. 버르장머리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장군한테 반말하는 졸병이 더 버르장머리가 없는 거 아니 셈?"
"나는 정신 나간 졸병이야."

"즐."
"아저씨 지금 무지 열 받았으니까. 신경 건드리지 말고 딴 데 가서 놀아라. 만약 한 번 더 내가 찍은 몬스터를 집적거리면 그때는 니 캐릭터를 공중 분해시켜 버릴 거야."

약간이라도 겁을 집어먹겠지. 나는 다시 몬스터 사냥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녀석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가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자기도 공격하는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허접한 갑옷에 저 렙(LOW LEVEL)의 장비들. 나는 녀석이 별 볼일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몇 대 쥐어박으면 도망쳐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이거나 먹어라."

나는 녀석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4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5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3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피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도망칠 때까지 계속 폭행을 가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갑자기 데미지창에 데미지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빌어먹을. 나는 그제서야 등골이 오싹해졌다. 녀석은 어느새 자신을 값비싼 갑옷과 최고급 무기들로 무장시키고 있었다. 녀석은 이른바 고렙(HIGH LEVEL)이었던 것이다.

"막아 보셈."
이번에는 녀석이 내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100. 150. 120. 100. 나의 피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죽으면 당연히 경험치 하락이다. 나는 체면을 불사하고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뒤에서 녀석이 쏜 화살 하나가 날아와 정확하게 내 등짝에 꽂혔다. 꺄악.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초록색 필드 위로 맥없이 풀썩 쓰러져 버렸다. 이어서 떠오르는 메시지. 싸울아비 검을 떨어뜨리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거쳐 마련한 싸울아비 검이었던가. 그러나 이제 싸울아비검은 녀석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키키."
녀석은 뻗어 있는 내 시체 위로 조롱하듯 자신이 갈취한 싸울아비검을 놓았다 집어 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녀석은 이른바 시체 밟기 놀이로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수모였다. 하지만 나는 복수전을 재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녀석은 비록 초딩이었으나 나보다 한결 막강한 장비들과 교활한 전략을 습득하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만난 초딩들은 대부분 앵벌이 수준이었으며 나름대로 순진한 일면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싸구려 장비들로 무장된 저렙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만난 초딩은 지존을 넘볼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초딩 맞냐?"
"맞아염."

"몇 학년이냐."
"오 학년."

"커서 뭐가 될 거냐."
"과학자."

"어떤 과학자?."
"지구를 지키는 과학자."

"너는 공상과학 만화영화에서처럼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할 거라고 생각하냐."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지 않아도 지구에 살고 있는 어른들끼리 서로 전쟁을 일으켜서 지구를 박살내고 말 거예요."

을지문덕은 어른들을 별로 존경스럽지 않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다. 존경스럽지 않은 존재로 생각하기보다는 차라리 경멸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 짙었다.
"그렇다면 너는 지구를 어떻게 지킬 건데?"

"제가 발명한 최첨단 로보캅으로 어른들을 모조리 체포해서 처형해 버릴 계획이셈."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으로 후세에 그 이름을 빛낸 장군이지만 을지문턱은 실수대첩으로 후세에 그 이름을 빛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어른들도 있을 텐데 모조리 체포해서 처형해 버리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냐?"
"좋은 어른들이 어디 있으셈?"

"너를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은 어떻게 할 거냐."
"대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원칙도 모르셈?"
녀석은 비정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른들을 제거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있었다. 앞으로 십년 정도만 지나면 나도 녀석이 발명한 최첨단 로보캅의 광선총 따위에 바비큐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너도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 마셈. 저는 짱구가 아니셈. 나이를 먹지 않는 약도 발명할 계획이셈."

물론 실현이 불가능한 계획이지만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면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라도 내재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녀석은 자신의 부모조차 제거대상으로 간주하는 비정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녀석은 셈이나 염으로 끝나는 문체를 구사하고 있었지만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다른 초딩들처럼 이모티콘을 남발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사실들이 내게는 오히려 녀석을 더욱 치밀하고 비정한 초등으로 느껴지게 만들고 있었다. "너 달이라는 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구라 까지 마셈."
"그건 지구를 지키는 미래의 과학자가 쓰는 말이 아니라 못된 짓을 일삼는 깡패들이나 쓰는 말이야."

"걱정도 팔자 셈."
"이놈이."

"즐."
즐이라는 단어 역시 초딩들이 즐겨 남발하는 신조어였다. 초딩들의 채팅은 즐로 시작해서 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즐은 90년대 말 하이텔이나 천리안 등에서 가벼운 인사말로 사용하던 통신용어 ‘즐팅’에서 유래되었다. 즐팅은 ‘즐거운 채팅 하세요’를 줄여서 만든 인사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즐이라는 한 음절로 축소되어, 짜증난다, 상대하고 싶지 않다, 지,랄한다, 듣기 싫다, 꺼져라, 등의 경멸적 의미를 담고 있는 비속어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상태였다.
KIN.

즐과 동일한 용도로 쓰이는 신조어였다. 일반적으로 즐의 사용이 금지되자 대용품으로 개발된 은어였다. KIN은 알파벳으로 표기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영어가 아니었다. KIN은 열두시 방향으로 돌려세우면 즐이라는 한글로 둔갑하도록 만들어진 응용문자였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초딩들이 만들어 내는 폐해는 실로 다양했다. 이유 없는 시비 걸기, 다짜고짜 욕설하기, 쓸데없는 그림파일 올리기, 불필요한 트래픽 유발하기, 게임 중에 무례한 행동은 다반사고 규칙을 지키지 않아 다른 사용자들의 불쾌감을 조장하는 일도 허다했다. 타발도 현란하고 말발도 당찬 편이어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상대가 초딩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때로는 사태가 심각해져서 사이버 수사대에 고발을 하고 나서야 초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영악스러운 초딩들은 자신들이 온라인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초딩들의 공습에 시달려 본 운영자들은 초딩반사라는 부적을 내걸어 보기도 하고 초딩박멸이라는 구호를 내걸어 보기도 하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무튼 승리를 축하한다."

"초딩한테 개박 살이 났는데 쪽팔리지도 않으셈?"
"어떤 경기든지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란다."

"닭살."
"너는 전혀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아이로구나."

"어른을 공경할 줄은 몰라도 어른을 공격할 줄은 알아염."
"이 아저씨는 너를 만나고 비로소 대한민국의 장래가 암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6이나 쳐 드셈."
"반사."

나는 녀석의 말투에 그만 정나미가 떨어져서 인사도 나누지 않고 재빨리 퇴장해 버리고 말았다. 186이나 쳐드시라니. 녀석이 마지막으로 내게 던진 은어는 지독한 욕지거리였다. 186을 한자로 변환하면 一八六이 되고 그것을 종렬로 합체하면 한글로 좃이 된다. 그러니까 ‘186이나 쳐드셈’을 의역하면 ‘좆이나 먹어라’가 된다. 그러면 내가 받아친 반사란 무엇이냐. 그 욕지거리를 상대편에게 그대로 되돌려 준다는 뜻으로 쓰이는 반격 어다. 니놈이나 처먹어라. 나무관세음보살.

나는 진저리를 치면서 컴퓨터를 종료시켜 버렸다. 컴퓨터를 종료시키고 나서도 녀석과 벌였던 전투장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초딩에게 그토록 무참하게 깨져 버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녀석의 말투들은 또 얼마나 정나미가 떨어지는가. 요즘 초딩들이 영악스럽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으로 발전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인터넷 속에서 파충류로 돌연변이를 일으킨 초딩녀석 하나와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도망쳐 나온 느낌이었다.

"도대체 학교에서는 애들한테 무얼 가르치는 거야."
"요새는 교육자는 없고 교직자만 있다는 말 못 들으셨나."

사태파악이 안 되는 사람들은 상투적으로 학교에다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 전체가 미쳐 가고 있다. 세상 전체가 미쳐 가고 있을 때는 학교도 대책 없이 미쳐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예전의 국민학생들과 지금의 초등학생들을 비교해 보면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확연히 깨달을 수가 있다. 예전의 국민학생들은 담임이 회초리를 꺼내들면 겁부터 집어먹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선생님 잘못 했어요, 라고 빌었다. 그러나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담임이 회초리를 꺼내들면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든다. 때리기만 하면 아동학대신고센터에 고발해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의 대학생들과 지금의 대학생들은 질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는 책을 읽지 않으면 대학생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대학생 대접을 받는다. 예전의 대학가에서는 서점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가에서는 술집이 호황을 누린다.

예전에는 호스티스들이 여대생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대생들이 호스티스 흉내를 내면서 거리를 활보한다. 예전에는 국민학생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이나 장난감을 대학생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대중음악이나 액세서리를 대학생들이 똑같이 선호한다. 대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이 똑같은 수준의 문화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은 모든 문화가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다. 어디를 들여다보아도 뒤죽박죽이다. 양심도 죽었고 예절도 죽었다. 전통도 죽었고 기품도 죽었다. 낭만도 죽었고 예술도 죽었다. 그것들이 죽은 자리에 오늘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밤이 깊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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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님도 리니지 폐인 생활 좀 해 보신듯...^^;


[음악 : 'Rainy window..' (비내리는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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