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창작 판소리 똥바다


김지하 창작 판소리 똥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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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 임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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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가(자업자득가:自業自得歌)

옛부터 이르기를 칼 가진 놈 칼로 망하고 돈 가진 놈 돈으로 망해 삼라만상 인간백사가 모두 다 자업자득 힘꼴 센 놈 힘만 믿고 저 혼자 날치다가 임자 만나 폭삭 나무 잘타는 놈 나무에서 떨어지고 산 잘타는 놈 벼랑에서 미끈 헤엄 잘치는 놈 쥐올라서 익사 벽돌 쌓기 미친 놈은 벽돌 와그르르르 입싼놈 구설수 글 모난 놈 필화 데모 잘허는 놈 관재수가 활짝 빽 잘쓰는 놈 줄 잘타는 놈 때 잘짚는 놈 물 잘보는 놈 이런 솜씨 저런 기술 아차 한번 실수하면 모두 다 저 잡아먹는 재조로다 영악한 놈일수록 지 무덤 지가 판다는 말이 이를 두고 이름이라 어와 세상 사람들아 이제부터 내가 별별 기기묘묘한 얘기 하나 할 터이니 두눈 부릅 뜨고 두 귀 쫑긋 세우고 말대꾸도 하여보고 '좋다' '잘한다' 추임새도 넣어가며 거드렁거리고 놀아(좋다)

2. 삼촌대(三寸待) 생김새 대목

현해탄 건너 저 일본국에 맹랑헌 아주 맹랑헌 왜놈 하나가 살았는데 성씨는 똥 분자요 이름은 삼촌대 그쪽 발음으로 하자면 좆도맞대라 잠깐만 기둘려달라 하는 뜻이렷다 이놈이 어떻게나 욕심이 많은지 양잿물도 한번 삼키면 뱉는 법이 없는데다가 뭐든지 그저 닥치는대로 쳐먹어갖고 그 머시냐 부사산인지 걸귀산인지만하게 뱃대기만 디룩디룩하겠다 키는 한자 세치 닷푼 장구통 배야지 실락콩 모가지에 오리발 안짱다리 날 좀 보소 궁둥이 살려줍소 무르팍 원숭이 쌍통에다 뱁새눈 쥐털수염 독하게 거사리고 들창코 뱅어주둥이 쪽박귀 벼룩이 이마빡 제 키보다 더 높은 나막신을 신고 따각 따각 따각 따각 따각거리고 다닐 제 시커먼 두 불알이 추욱 늘어져 동서남북으로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3. 삼촌대 집안 내력(來歷) 대목

이 삼촌대의 애미가 있는데 앙칼지고 표독스럽기 짝이 없는데다가 사시장철 앞으로 똥싸고 뒤로 오줌싸고 근년에는 줄방귀로 장엄무비 기미가요까지 연주를 혀갖고는 그 유명한 중공산 홍시먹고 병나은 뒤로는 똥이라면 펄쩍 대경실색을 하겠다 이 삼촌대 애미 아까끼꼬 또끼고 여사께서 매일밤 삼촌대를 앉혀놓고 집안내력을 가르치는데 집안내력을 볼작시면 제 애비 분이촌대는 팔일오 해방 때 부산 부두에서 저희 항복한 줄도 모르고 빠가빠가빠가 폼 잡다 똥벼락 맞아 채독 앓다 빠가빠가 뒈지고 지 할애비 분일촌대는 삼일운동때 명월관에서 나니나니나니나니 만세소리에 깜짝놀라 나니나니나니 줄행랑치다가 똥통에 빠져 뒈지고 증조 분영점일촌대는 의병난때 뒷간에 숨어 똥싸는 척 흉물떨다 똥구녕에서 아가리까지 쭈욱 오뎅고치로 뒈지고 고조 분영점이촌대는 동학혁명때 우금치에서 에이쿠소 에이쿠소 에이쿠소 똥밟고 미끄려져 에이쿠쿠쿠쿠쿠쿠 박터져서 뒈지고 비조 분불가지촌대는 임진란때 울독목에서 남의 바다 물고기 밥이 됨에 그중 점잖게 뒈졌으되 그 또한 필경은 물고기 똥이라 이 집구석이 대대로 똥과 조선은 불구대천의 원수라 가명 이순신 부관참시 가훈 빠가야로 죠센징 가풍 설욕의 그날까지 방분을 인내한다

4. 금분법 금분령 (禁糞法 禁糞令)

이때여 나라에서는 국책으로 금분법 금분령을 내려 죽도록 처먹어라 미치도록 싸지 마라 이러한 구호까지 내건지라 뭐든 그저 닥치는대로 줏어다 아가리에 지쑤셔놓고 모조리 싸그리 대구리 깡그리 먹을것 못먹을것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돼지먹이듯 쳐먹게만 하고 싸는 것은 절대금지 대변은커녕 소변도 금지 소변과 더불어 방귀도 금지 엉거주춤한 자세도 금지 똥구녕에 손대는건 당연히 금지 똥쳐다보는것도 금지 똥냄새 맡는 것도 금지 얘기하는 것도 금지 변소를 먼 발치서 바라보는 것도 금지 똥꿈 꾸는 것도 금지 꿈꾼 사람 가까이 가는 것도 금지 똥생각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금지 바라본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것도 금지 특히 미국 소련 중공 독일 같은 문화국민 앞에서 똥소리 하는 것은 강력무쌍하게 금지 똥 하고 떨어지는 물건 줏어드는 것도 금지 똥 하고 울리는 피아노 소리 듣는 것도 금지 똥똥똥 시작하는 재판 방청도 금지 똥 싸는 그림 그리는 것은 절대 금지 똥 싸는 노래 부르는 것도 절대 금지 똥싸는 소설 똥싸는 영화 똥싸는 연극 똥싸는 무용 똥싸는 설교 똥싸는 평론 똥을 연상시키는 일체 행위를 금지 금지 금지 절대 금지 삼촌대 애미란년 삼촌대를 닦달한다 아랫배 힘을 주고 끙소리만 내었다가는 야만인 미개인이라 욕퍼붓고 쭈그리고 앉으면 대번에 일으키고 몸 비비 꼬면 꽂꽂이 세우고 바지춤만 붙잡아도 좆도맞대 상 조금만 찡그려도 좆도맞대 하염없이 구름만 봐도 좆도맞대 한숨쉬어도 좆도맞대 뒤만 보아도 좆도맞대 자나깨나 좆도맞대 좆도맞대 좆도맞대 좆도맞대 좆도맞대 좆도맞대

5. 똥을 참느라고 지랄발광 하는 대목

아무리 참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쳐먹고 요렇게 싸질 않으니 속은 부글부글 끓어내릴 직전이요 똥구녕은 간질간질 도저히 견딜수가 없구나 삼촌대란 놈이 똥을 참느라고 공연히 이리저리 뛰면서 가명을 익힌다 가풍을 살린다 지랄발광을 했샀는데 엇모리렸다 이충무공 그려놓고 바늘로 꼭 쑤시다 제 손만 찔리고는 빠가야로 조센징 조선놈 허재비 세우고 디립다 돌격하다 마빡만 깨지고는 빠가야로 조센징 조선의 조짜만 보면 똥이 더 마려워 말뚝으로 똥구녕을 확 쑤셔박고 빠가야로 조센징 조일신문은 보이는대로 짝짝 찢어버리고 조일 맥주는 닥치는대로 와장창 깨버리고 아침도 조짜라고 아침만 되면 심술이 나서 아무나 붙잡고 시비허다가 실컷 얻어 터지고 빠가야로 조센징 저혼자 흥분하고 저혼자 감격하고 똥은 마렵고 배는 불르고 아이고 나 미치겄네 저혼자 악써대고 저혼자 발광하고 저혼자 이빨 뜩뜩 저혼자 눈물 줄줄 저혼자 떼굴떼굴 몸부림을 치면서 아이구 나 환장하겠네 갑자기 뭣이 번뜩

6. 삼촌대 방한 (訪韓) 대목

웬 깃발 하나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거늘 대체 저것이 뭣인고 허고 가까이 다가가서 자서히 한번 읽어나가는데 일한친선 기생포식 처녀시식 염가봉사 선인능멸 자존과시 오물배설 과거설욕 일확천금 시장확보 노력수탈 불만해소 자원약탈 보물도굴 공해수출 폐품처리 민간방한단이라 깃발이 펄럭펄럭 드디어 때는 왔도다 삼촌대란 놈이 어떻게나 좋은지 그냥 제 볼기를 한번 탁 치는디 방정맞은 방귀가 기다렸다는 듯이 뽀옹 아차차차차차 아직은 좆도맞대 비조 앞으로 나아가 전가의 단검을 달빛에 비춰간다 가슴엔 비수 입술엔 미소 아랫배가 팽팽하게 아파오는 때마다 아 눈앞에 떠오르던 조선반도여 피끓는 복수의 머나먼 길 설욕을 못하면 어이 다시 돌아오리 바람은 스산하고 현해탄은 차가운데 아아 사나이는 떠난다 창행의 길을 플라스틱 미소와 약간의 선물과 좋았던 옛날의 노래소리에 고요히 고요히 아주 고요히 조선놈은 천진하게 잠이 든다네 야마도여 일본도를 뽑아라 약탈 착취하자 바닥까지 긁어서 끝장내서 버리자 아 평화와 우정의 천사 그 이름도 그리운 친선방한단(오잇) 빠빳한 엔화와 시세이도와 본토대륙 간다는 방한단위해 뜨겁게 뜨겁게 아주 뜨겁게 조선년은 불꽃처럼 몸이 단다네 야마도여 훈도시를 벗어라 겁탈 유린하자 뼛속까지 짓밟아 요절내어 버리자 아 예절과 지성의 신사 그 이름도 거룩한 친선방한단 (야마도여 똥구녕을 벌려라 실컷 내깔리자 남김없이 싸질러 똥바다를 만들자) 아 협력과 건설의 비상 그 이름도 찬란한 친선방한단 이렇게 발들은 굴러대며 몸을 흔들며 지놈들이 무슨 얼어죽을 가미가제라고 젠장 눈물을 주울줄 흘려싸면서 군가같지도 않은 군가를 빼락빼락 악써 불러대며 깃발따라 줄지어 타랍을 내려서니 변소문 같은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벌죽벌죽 웃으며 김포공항이 인사를 하는구나 아리가또오 드디어 내 변소로다

7. 요정행(料亭行)대목

삼촌대란 놈이 막 터지려는 뱃대기를 꽉 움켜지고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꼭 까마귀같이 새카만 연미복을 입은 세놈이 날쌔게 달려와 굳세게 손잡고 거세게 인사를 허는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금오야데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권오야데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무오야데쓰 뭔놈의 아랫도리가 그렇게 고장이 났는지 아 요놈들이 돌아가면서 연신 굽신굽신 절을 해대니 삼촌대란 놈이 어떻게나 기분이 좋은지 나루호도 나루호도 그냥 그 자리에서 한번 줄방귀를 한번 끼어보는데 뿡뿡뿡뿡뿡뿡뿡 지놈들 국가가 연주되었겄다 이 기미가요 서주부를 들은 금권무 세 오야놈이 연방 침을 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무사 가무사 가무사하무늬다 오늘밤에는 근대화된 조선을 실컷 실컷 실컷 보여드리겠스무니다 타시죠 자동차에 올라탔겄다 이놈들이 오만불손하게 턱 기대앉더니마는 클럽 육구로 가자느니 싸롱 신궁으로 가자느니 요정 북해도가 좋다느니 카바레 후락원이 낫다느니 춥다느니 덥다느니 젊잖다느니 야하다느니 꼭 낀다느니 헐렁하다느니 지놈들끼리 계속 티격태격 옥신각신 하겄다 삼촌대란 놈이 들은 풍월이 있는지라 거 우리 그러지노 말고 거 일한이노 친선 도모하는 의미에서 거 정치를 배신이노 한 그 여자집으로 갑시다 이 소리를 듣더니 금 권 무 세 오야놈이 일제히 뭣히 찔리는지 꼭 똥씹은 표정으로 정치를 배신한 여자요? 아 배정자 좋습니다 만장일치 무사통과 부릉부릉부릉부릉 김포가도를 내닫는다 내발산동거쳐 등촌동을 넘어 양화교 선뜻건너 성산대교 당도 좌우산천 바라보니 한강물이 똥물이로구나 침수됐다 망원동 연금됐다 동교동 어데로 갈거나 이대앞으로 갈거나 저대앞으로 갈거나 깊숙한 금화터널 헐레벌떡 통과 독립문이 서있구나 이자많은 내자동 한푼줍쇼 적선동 한다면 하는 궁전동 살짝 비켜 한걸음에 내달으니 남대문이 예로구나 남대문 막상 내달아 요나 우동 얼른 먹고 삿포로 횟집 살짝 들러 헤이 하치로 야끼도리 히데요시 노바다야끼 남만정 조선분점 휘이 둘러보고 갑자기 방향을 휘익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부릉 끼익 배정자네 집에 당도를 했겄다

8. 요정의 안방행 대목

주란화각이 반공해가 번뜩 솟았는디 안에서 똑 일본년같이 생긴 조선년 조선년같이 생긴 일본년들이 기모노차림에 오리걸음으로 종종종종종종종 나와같고는 무슨 말을 끄는지 야 이랴 이랴 이라샤이 이라샤이 하면서 안내를 하는디 홍살문 지나 도리이도 지나 소슬대문 철문도 지나 충물 안문 들어서니 좌편은 인공분수요 우편은 인공폭포로다 댓돌에 올라 세살문 열고 툇마루 건너 복도를 지나 여닫이문 열고 다다미를 거쳐 온돌방 울긋불긋 비단공단 방석이 깔려있구나 한쪽 벽엔 일본도가 비스듬이 세워있고 열두굽이 병풍에는 을사년 조약도 펼쳐있고 화류문갑에는 한일정치협력사 한일경제협력사 한일남여협력사 조선년 일본놈 합창한 괴성 카세트 꽂혀있고 천장에는 휘향찬란 연등이 걸렸난디 글자가 씌였으되 일한친선내선일체라 알록달록 자개상에 왼갖음식이 들어온다 일본서 사온 한국산 맛김 구주에서 말린 남해 대구 동경서 만든 제주 돼지고기 통조림 고려 명산 딱지 붙은 고노와다 조선 계자 원료로 만든 일제 청와사비 발라놓은 바다가재 사시미 잡자마자 냉동선에 실여 대판에서 얼렸다가 비행기로 방금 공수해온 충무산 도미 사시미 똑 그런 대덕 대게 똑 그런 연수 농어 똑 그런 영광조기 복쟁이 지대 오대산 살모사 가루발라 아지노모도 톡톡 뿌린 삼천포 꼼장어구이 전라도 꽁 미소시루 광주 무 다꾸앙 왕십리 나라스께 흑산도에서 잡아 대마도에서 검사한뒤 한국 햇볕에 말려 동경에서 가루로 빠 동해물에 섞어서 일본에서 제품한 서울제 홍삼젖을 날배추에다 곁들여 따끈한 정종부터 한잔두잔석잔 날름날름날름날름날름날름(얼씨구 잘한다)

9. 주접떠는 대목

이렇게 한잔 들어간 연후에 사미생과 가야금이 한데 어울려서 땅띠동 땡똥 거리는데 금오야 권오야 무오야 이 세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놓고 조선식 가라오케로 한놈씩 돌아가면서 주접을 떨어보는데 절절절 절씨구 좆절절절 절씨구 금오야란놈 노래한다 투자투자투자투자 일본은 어머니 한국은 아들 어머니가 젖주듯이 투자좀 해주쇼 회사문만 제발제발 닫지 않게 해주시면 마름도 좋고 머슴도 좋소 덩덩 덩닥궁 더덩 덩 덩 덩닥궁 권오야란놈 춤을 춘다 협력협력협력협력 일본은 오야붕 한국은 꼬붕 오야붕이 뒷배선듯 협력좀 해주쇼 나혼자만 이 기회에 특혜 이권 차지하면 합작도 좋고 간섭도 좋소 똥기똥기 똥딱기 똥딱기 똥딱기 무오야란놈 장단친다 안보안보안보안보안보 일본은 상전 한국은 부하 상전이 지휘하듯 안보 좀 해주쇼 내 위치만 변함없이 지켜만 주신다면 동맹도 좋고 합병도 좋소 얼씨구 절씨구 칠씨구 팔시구 좋다

10. 난장판 대목

이렇게 주접들을 뜬 연후에 자정이 지났던가 보더라 요놈들이 술들이 거나하게 취해갔고는 이제 본격적으로 난장판이 벌어지는데 요 왜놈들 기생관광코스 풀코스 중에서 라스트코스였던가 보더라 조선색 왜색 그냥 뒤섞여갖고 한번 지그재그로 놀아나는데 아리랑 쪼이나 아라리오 도꼬샤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계집이 사내옷 입고 사내가 계집옷 입고 악쓰고 소리치고 물어뜯고 할퀴고 벗기고 삭시고 조지고 올라타고 진짓 누르고 계집들이 달려들어 홀랑 벗겨버리고 이년이 여기 만지고 저년이 저기 만지고 여대생같은 기생 기생같은 여대생 씻겨주고 닦아주고 만져주고 부벼주고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발가락을 빨아주니 기분이 흐뭇해져 울산은 모두 내꺼 더 좋은데로 가자 관광호텔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무르팍을 핥아주니 기분이 야릇해져 마산은 모두 내꺼 더 넓은 데로 가자 해운대 호텔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엉댕이를 꼬집어주니 미치고 환장해서 부산은 모두 내꺼 더 깊은데로 가자 칼호텔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허벅다리를 주물러주니 초치고 환장해서 제주돈 모두 내꺼 더 편한데로 가자 도꾜호텔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사타구니를 주물러주니 눈깔이 뒤집혀서 서울은 모두 내꺼 더 높은데로 가자 중앙청 꼭대기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여대생같은 기생 기생같은 여대생 야마가 확 돌아갖고 조선은 모두 내꺼 가장 높은데로 가자 이순신동상 꼭대기 쪼이나 아리랑 도꼬샤 아라리오 쪼이나 쪼이나 나루호도노 쪼이나 삼촌대 거동봐라 삼촌대 거동봐라 한손으로 똥구녕을 확 틀어쥐고 어금니 꽉꽉 물고 기신 기신 동상 꼭대기 당도 이순신 투구위에 게다발로 에잇 터억

11. 이순신 동상 위에서 똥을 내 싸 지르는 대목

버티고 서더니만은 감개무량한지 눈물을 한방울 뚝 떨어뜨리고 나서 갑자기 품에서 단도를 꺼내 크게 휘두르며 가로되 비조 분불가지촌대 고조 분영점이촌대 증조 분영점일촌대 할아버지 분 일촌대 아버지 푼이촌대는 들으소서 가문의 원수를 갚고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와신상담 절치부심 오로지 가훈과 가명과 가풍을 지켜 똥을 참고 정진해온 불초자손 분삼촌대는 오늘 모년모월모일모시 바야흐로 원수의 나라 조선땅 철천지 원수 이순신의 두상을 밟고 서서 드디어 설욕을 필하였음을 삼가 조상들께 고하나이다 봐라 이제 세계의 대세는 온갖 굴욕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위대한 니뽄진 분삼촌대로 하여금 조선을 마음껏 농락 겁탈할수 있는 위대한 권리를 하사하였도다 보아라 이제 나가는도다 이제 바야흐로 나가는도다 오 참고 참았던 그 똥 그렇다 바로 그 똥이로다 예이 뿌지직 뿌지지지직 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찍 홍똥 청똥 검은똥 흰똥 단똥 쓴똥 신똥 떫은똥 짠똥 싱거운똥 물똥 술똥 피똥 약똥 묽은똥 성긴똥 구린똥 고린똥 설사똥 변비똥 다된똥 덜된똥 너무 된 똥 똑똑 끊어지는 똥 줄줄이 이어지는 똥 꼬불꼬불 말리는 똥 확확 퍼져나가는 똥 좌르르 쏟아지는 똥 삐죽삐죽 힘들게 나오는 똥 삼촌대 조상들이 그렇게도 고생한 똥 삼촌대가 이때까지 이 악물고 참은 똥 일장기 같이 똥그란 똥 부사산 같이 뻥 뚫린 똥 게다짝같이 두 다리 달린 똥 미쯔비시 마크처럼 세 갈래난 똥 미국놈 빠다기름 빙빙 도는 똥 월남놈 살갗처럼 까칠까칠한 똥 태국 계집 대만 계집 마레이 계집 필리핀 계집 라오스 캄보이아 인도네시아 버마 계집 달거리 속것들 부글부글부글 끓는 똥 딸라똥 루블똥 월화똥 리라똥 마르크똥 프랑크똥 피아스타똥 황금똥 주석똥 텅스텐 망간똥 알미늄 강철똥 합성섬유똥 똥이야 이리와도 이크 똥이야 저리가도 이크 똥이야 거리에도 광장에도 방안에도 골목에도 왠갖 빈대 갖은갖은데는 온통 똥덩어리가 가득 질질질질질질질 흘러넘치니 어허 온 세상 천지가 똥바다로구나 잘난놈 못난놈 착한놈 모진놈 철난놈 철안난놈 똑똑한 놈 얼빠진놈 죄많은 놈 죄없는 놈 권세좋은놈 권세없는 놈 이놈 저놈 이년 저년 할것없이 조선년놈들은 모조리 모조리 똥바다에 휩쓸려 허우적대는구나 이 난리통에도 일본놈과 수군수군 흉게 꾸미는 놈 일본놈과 돈 몇푼에 몸거래 하는 년 일본놈 붙어 먹을려고 일본말 배우는 놈 일제대가 좋았다고 빈소리 하는 놈 일본놈한테 땅팔고 이민갈 차비하는 놈 이런 똥물에 튀겨죽일 년놈들이 악을 쓰고 밀려 다니면서 일본놈 것은 똥도 달다더라 이꼬망가장 다갖고 아귀아귀 쳐먹고 자빠졌고 이놈들 내 똥맛이 과연 어떠하누 이 북세통에도 아첨을 하느라고 금오야란놈 아 똥도 제대로 싸노니 퍽 향기롭소이다 권오야란놈 아이구 똥도 가까이서 대하니 퍽 매력있사와요 무오야란놈 어이구 똥도 강력하니까 퍽 땡기네요 오냐 어서들 마음껏 쳐먹어라 이 잡것들 으하하하하하 뿌지지 뿌지지직 뿌지지지지찍 똥이야 똥봐라 새똥나온다 민주주의같이 생긴 파시즘똥 자유주의같이 생긴 전체주의똥 평화주의 같이 생긴 군국주의똥 사해동포주의 같은 식민주의똥 태평양 신시대의 깃발달린 똥 옥출똥 징용똥 학병똥 정신대똥 위안부똥 매춘똥 똥이야 똥이야 똥이야 똥이야 똥봐라 저 똥봐라 대포주둥이가 똥에서 튀어나오고 탱크 바퀴가 똥에서 굴러나오고 총알이 확성기가 기관총 비행기가 전투함 순양함 항공모함이 나오고 유도탄 원자 수소 네이팜탄들이 모조리 똥에서 불쑥불쑥 기어나오고 하늘에는 무시무시 거대한 버섯구름이 뭉글뭉글 섬광이 번뜩 도시가 한꺼번에 쾅 산이 무너지고 강이 무너지고 거리가 찢어지고 건물이 갈라지고 모든 벽들이 와그르르~ 무너져내리고 똥으로부터 저 똥더미 똥바다로부터 괴물이 시커먼 털과 시뻘건 살덩이와 성병과 정신착란과 수은병과 미나마타와 원자병과 아편중독이 더덕더덕 달라붙은 거대한 괴물 똥으로부터 태어나오고 뭐라고 으르릉거리면서 거리거리를 천천히 배회를 하고 태양은 천천히 떨어져내리고 구름은 꼼짝하지 않고 서 있고 농부의 이마위 땀방울은 흐르기를 멈추고 공장의 굴뚝은 입벌린채 침묵하고 여기저기서 고이고 잠기고 멈추고 죽어 썩어가고 썩어문들어져가고 태양은 천천히 떨어져내리고 괴물은 그 위를 가득이 배회하고 잘린 손목들이 꿈틀대고 부러진 발목들이 기어다니고 빠진 눈알들이 번쩍이고 뽑혀진 내장이 질질 감기고 귀와 코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피묻은 입술들이 뭐라고 소리치네 고름이 유령들이 손톱 발톱 머리칼들이 하늘 가득 너울너울 춤추고 노래불러 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어디에 있나 우리 고향 어디 어디 우리들의 그 육신은 하늘은 회색 피 뿐이네 울며 저며 헤매어도 갈곳이 없네 그려 아 반도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이렇게 갈곳을 잃고 고향도 없이 헤매는 원혼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구천을 사무쳤도다

12. 동상에서 떨어져 죽는 대목

이때여 삼촌대란 놈은 어떻게나 똥을 내싸 갈겨버렸던지 그냥 지 속 내장 곱창까지 그냥 죄다 빨려나와갖고는 긴꼬리가 축 늘어져서 저 망망한 똥바다 위를 넘실넘실 출렁출렁대는데 이놈이 그런줄도 모르고 한군대를 얼핏 내려다보니 웬 학필이 놈들이 공돌이 공순이 농사꾼 날품팔이들과 하고 어울려갖고 잔뜩 떼를 지어갔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삼촌대한테 막 장돌을 던지고 마구 욕을 해쌌더니 삽 작대기 책 가래 판장 할거 없이 닥치는대로 들고 나와 열심히 열심히 똥을 치우고 있겄다 삼촌대란 놈이 깜짝 놀라 물어가로되 야 이놈들 너희들 지금 거기서 무엇이노 하는거데스까 농사꾼 날품팔이들이 먼저 답해 가로되 꼭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씨가 이승만 박사한테 부임인사하듯이 에이 똥치운다 공순이 공돌이들 답해 가로되 똥치운다 학필이 놈들이 일제히 답해 가로되 똥시 물러가라(물러가라) 똥시 물러가라(똥시 물러가라) 똥시 물러가라(똥시 물러가라) 삼촌대란 놈이 가소롭다는 듯이 목에 잔뜩 힘을 주고는 장엄무비 거룩무쌍하게 선언을 하겄다 아는가 너희들은 구만리를 날으는 붕새의 얘기를 조선은 한낱 내 웅지의 작은 벌판에 불과한것 내 이제 한번 크게 날아 저 광활한 아시아 대륙과 저 망망한 섬과 바다를 이 품속에 제패하리로다 이제 온 대륙과 섬과 바다는 온통 나의 똥으로 가득 덮히고 그 위를 나홀로 별처럼 빛나는 제왕으로 군림하리로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삼촌대 간교한 웃음소리 저 망망한 똥바다 위에 멀리멀리 울려퍼져 나갈적에 이때여 한 쬐그만 조선 참새 한 마리가 우연히 동상위를 지나다가 이소리를 듣고 기가 차서 하! 나만밖에 안한놈이 뭣이 붕새 붕새 아나 붕새 아나 붕새 에이 에이 조선 참새 불치똥맛이나 한번 봐라 에이 찍 내싸 갈기고 훨훨 날아가니 똥을 피하느라고 요리저리 몸을 움찔대던 삼촌대란 놈이 그만 새똥밟고 미끄려져 아차차차차차 좆도맞대 삼촌대 떨어진다 새똥밟고 떨어진다 이순신 동상 꼭대기로부터 끽 똥바다를 향하여 꺼꾸러 떨어진다 좆도맞대 아이구 삼촌대도 이제 끝장이로구나 아이고 내새끼도 나처럼 똥을 참다 뒈지겠구나 좆좆 좆도맞대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떨어진다 똥바다를 향하여 빠가야로 조센징 덴도헤이까 반자이 휘익~ 풍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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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옛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망한자 부지기수 어찌 분삼촌대 한놈 뿐일까마는 저 죽을줄 뻔히 알면서도 똥에 미쳐서 똥을 모으고 똥을 기르는자 요사이도 끊임없으니 모를일이다 아마도 멸망이 또한 매혹인곳에 풀수 없는 또하나 똥의 비밀이 있음에 틀림없으렸다 이러한 이야기가 날같은 또랑 광대의 입 끝에까지 올라 백대에 민멸치 아니허고 길이길이 전해오니 그뒤야 뉘랴 알리 터질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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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내용

1. 단가 「자업자득가」(自業自得歌) 1: 00
2. 삼촌대(三寸待) 3: 00
3. 삼촌대 집안 내력(來歷)대목 1: 43
4. 금분법 금분령(禁糞法 禁糞令) 실시대목 3: 18
5. 똥을 참느라고 지랄발광하는 대목 3: 57
6. 삼촌대 방한(訪韓) 대목 2: 27
7. 요정행(料亭行) 대목 5: 35
8. 요정의 안방행 대목 4: 29



9. 주접떠는 대목 4: 43
10. 난장판 대목 2: 48



11. 이순신 동상위에서 똥을 내싸지르는 대목 4: 00



12. 동상에서 떨어져 죽는 대목 15: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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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시(譚詩)란 무엇인가

담시는 춤과 노래뿐 아니라, 나아가선 극적(劇的) 요소와 서정시적 요소, 서사시적 요소가 뒤섞여 있음에 그치지 않고, 결정적으로는, 그 모든 요소들을 작품의 바탕에서 떠받쳐주는 핵심 요소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소리'이다(그리하여 담시는 소리꾼의 요소가 강한 광대에 의해 구연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이런한 담시가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인 저 '판소리'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담시는 그러므로 김지하가 개척한 '찬작 판소리'라고도 일단은 말할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전통 판소리가 '소리'위주로 정형화(定型化)되어 온 것에 비하면, 담시는 극적인 요소와 그밖의 많은 장르 요소들을 수용함으로써 결국 '소리'를 중심으로 하는---김지하의 표현을 약간 변용한다면---'화엄적 장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와 시, 극과 노래, 서정과 서사가 자유로이 혼융하는 장르라는 점에서 담시는 탁월한 '열린 장르' 이며, 열린 장르이므로 담시는 그 본질상 창조적 시인 작가 연출가 배우 광대 소리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는 장르 이기도 한 것이다. 실로 첫 담시「오적(五賊)」이 발표된 이래거의 4반세기가 흐른 오늘에 와서야 온전한 햇빛을 보게 되는 이 자랑스런 민족 장르가 이 땅에 깊숙히 뿌리내려 민족의 뜨거운 사랑속에 자리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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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시 사설 줄거리 요약

똥바다
그로테스크와 코믹이 잘 어울리는 담시의 秀作

「똥바다」는 집안 대대로 똥과 조선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삼고 설욕의 날을 기다리는 현해탄 건너 일본국의 맹랑한 왜놈 분씨(糞氏) 일가의 이야기를 통해 한일협정 이후 다시 노골화되기 시작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재지배 야욕을 통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분씨(糞氏) 삼촌대(三寸待)는 '한일친선 민간방한단' 속에 은밀히 끼여들어 한국의 독재적 지배권력의 적극적인 협조와 비호 아래 마음껏 한반도를 유린하지만 스스로가 만든 똥바다 소에 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소리내력

비장한 풍자미와 비극적 그로테스크가 압도하는 담시의 명작

소리 내력(來歷)은 세 부분으로 묶인 담시"비어(蜚語)의 첫째 대목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작고 힘없는 민중 안도(安道)는 열심히 뛰어 서울에서의 삶을 꾸려가고자 하지만 돈없고 학벌없고 "빽"없는 그는 어느 한 모퉁이 발붙일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부와 권력이 지배층에 독점되어있는 암담한 현실이 안도(安道)의 발길을 곳곳에서 막았던 것이다. 지치고 지쳐 내뱉은 "에잇 개같은 세상" 한마디 때문에 유언비어 유포죄로 독재권력에 체포된 안도는 5백년간의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져 목과 팔다리가 모두 잘린 채 독감방에 갇힌다 그러곤 서울 장안에 언제부턴가 "쿵-" "쿵-"하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니 원한에 사무친 안도(安道)가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뚱이를 굴려 벽에 부딪는 소리였던 것 그 소리에 겁먹은 지배층은 안도(安道)를 사형시키지만 "쿵-" "쿵-"하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밤낮으로 끝없이 들려와 돈있고 힘있는 자들을 공포에 떨게한다는 이야기다

창작판소리

작고, 힘없는주인공들인 안도(安道)나 꾀수의 원망은 소리나게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인간화된 사회, 바로 그것입니다. 과장된 비유, 걸직한 사설, 기상천외한 풍자와 해학의 뒤에 오는 것은 바로 이 작은 형제들의 조그만, 그러나 간절한 소망인 것입니다. 나는 김지하 시인의 이 '작은 형제'에 대한 조용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사랑에 찡한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나는 김지하 시인의 담시들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우리 시대에 있어 우리 형식, 우리말로 된 훌륭한 묵상자료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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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본명: 金英一 )

194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 1959년 입한한 뒤 1966년 졸업 때까지 서울대 미학과 에서 수학함. 1964년 대일(對日)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가담, 첫 투옥, 이후 1980년의 출옥 때까지 투옥, 재투옥을 거듭하며, 장장 8년여 동안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낸다. 이 고난 속에서도, 1963년에 첫 시 「저녁 이야기」를 발표한 이후, 「황톳길」계열의 초기 민중 서정시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판소리 가락에 실어 통렬하게 비판한 담시(譚詩) 「오적(五賊)」계열의 시들, 「빈산」「밤나라」등의 빼어난 70년대의 서정시들, 그리고 80년대의 '생명'에 대한 외경과 그 실천적 일치를 꿈꾸는 아름답고 도저한 '생명'의 시편들을 생산하다. 1975년에는 '제3세계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로터스 특별상'을, 1981년에는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수상하다. 첫시집 『黃土』(1970)를 비롯,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애린』1· 2 (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벌밭을 우러르며』(1989), 대설(大雪 ) 『남(南)』(1982, 1984, 1985) 등의 시집과, '생명 사상'을 설파한 산문선집 『생명』(1992), 『옹치격』(1933), 『동학 이야기』(199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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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가 말하는 김지하 - '지하'라는 필명에 대하여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이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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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임진택

소리꾼 임진택은 김지하의 담시에 관심을 쏟으면서, 담시의 실연의 중요성을 인식, '오적' 등 담시를 창(唱)하기 위해 판소리를 오랫동안 습득하고, 마침내 1974년 12월 31일 명동성당에서 '소리내력'을 첫 강창(講唱)하니, 이로써 김지하 담시의 역사적인 첫 구연이 이루어진다. 소리꾼 임진택과 뛰어난 고수인 이규호는 전통 판소리의 비현대성과 박제성을 극복하려 한 '살아있는 판소리꾼'들로서, 그들은 국내외에서 모두 160여회에 걸친 담시 공연을 통해 '창작 판소리'인 김지하 담시의 예술적 탁월성을 널리 알리고, 그럼으로써 판소리의 현대화 작업을 몸소 실천해 왔다.

연극연출가
출생 : 1950년 (전라북도 김제)
소속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학력 : 서울대학교 외교학 학사
경력 : 2006년 3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1985년 극단 '연희광대패' 설립
1995년 극단 '길라잡이' 상임연출 겸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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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시 전문(全文)은 『五賊』--- 결정본 김지하 시전집 3권(솔 출판사, 1993)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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